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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NO를 못할까?” – 거절 불안의 심리학

by 오선임 2025. 5. 15.

“나는 왜 NO를 못할까?” – 거절 불안의 심리학을 탐구하기 위해서 오늘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왜 우리는 NO가 아니라 YES에 중독되는가 그리고 거절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질적인 심리 전략에 대해 설명해드릴 예정입니다.

“나는 왜 NO를 못할까?” – 거절 불안의 심리학
“나는 왜 NO를 못할까?” – 거절 불안의 심리학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의 부탁을 들었을 때, 머리로는 “이번엔 안 된다고 말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그 앞에 서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국 “알겠어”다. 이후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후회하면서도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착해서가 아니라, 복잡한 심리적 요인에 의해 ‘거절 불안’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실망시킬까 봐, 혹은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 거절이라는 행위를 회피한다.

이런 심리는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련이 깊다. 특히 조건부 사랑을 경험한 경우, ‘나는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미움받는다’는 내면화된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나 교사가 ‘착한 아이’일 때만 칭찬하고 관심을 줬다면, 아이는 점점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분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심리는 여전히 작동하며,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곧 ‘나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거부’에 대한 민감도가 유독 높은 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거절 민감성’이라 부른다. 이들은 거절이라는 행동 자체보다,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관계의 균열과 타인의 감정 반응을 과도하게 상상하고 두려워한다. 실제로 상대가 크게 상처받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 관계를 망쳤다는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린다. 결국 거절을 피하는 것이 자기 방어처럼 굳어진다.

왜 우리는 NO가 아니라 YES에 중독되는가

거절을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극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은 ‘인정 중독’의 일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거절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칭찬, 긍정적 평가, 관계의 안정성을 얻으려 한다. 이는 매우 사회적인 전략이며, 표면적으로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자기 소외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동조’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사회적 기준이나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발성을 억제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경향이다. 특히 한국처럼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이런 동조 심리가 더욱 강화된다. 타인을 배려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거절은 곧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거절하는 것 자체에 내면적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뇌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은 사회적 배제를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진화해왔다. 뇌의 전측 대상회는 신체적 통증뿐 아니라 사회적 거절에도 활성화된다. 즉 누군가를 거절하는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나를 거절할 수도 있다’는 공포로 이어지며, 이는 실질적인 고통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절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희생하더라도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패턴이 반복될수록, 자아 존중감은 점점 약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내 감정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질수록, 타인도 나를 그렇게 대하게 된다.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 '부려먹기 쉬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고, 감정적 번아웃을 불러온다. 즉, NO를 못하는 습관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자기를 해치는 습관이 될 수 있다.

거절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질적인 심리 전략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태생적으로 냉정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정서적 자율성을 갖춘 사람이다. 거절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NO를 말하는 것이 타인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거절은, 상대에 대한 불성실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첫 번째 전략은 ‘거절의 이유를 구체화하는 연습’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안 돼”라고 말하기보다는 “지금은 내가 여유가 없어서 도와주기 어려워”처럼 말하면 상대가 수용하기도 쉽고, 본인도 심리적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다. 이는 ‘비폭력적 의사소통’의 원칙이기도 하다. 내 욕구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공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거절의 간접적 연습’이다. 대면으로 거절하는 것이 어렵다면, 문자나 메신저를 통해 연습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또한 처음부터 큰 부탁이 아닌, 작은 요구부터 거절해보는 식으로 점진적인 노출을 시도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행동주의 치료에서 사용하는 ‘점진적 노출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천천히 익숙해지게 돕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거절 이후의 감정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거절했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관계가 무너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다루었을 때, 그 관계는 더 건강하고 솔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NO를 말하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거절은 단절이 아니라, 자기 감정의 경계를 설정하는 행위다. YES만 하는 삶은 타인의 욕구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이지만, NO를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주체로서 인정하게 된다. 거절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에 휘둘릴지, 아니면 그것을 직면하고 극복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결국 관계에서 가장 건강한 위치는, 내가 나를 잃지 않는 자리다. 그 출발점은 한 마디, “지금은 힘들어요”라는 정직한 NO에서 시작된다.